2019-06-03
한눈에 들어오는 로고는 없지만 가죽의 패턴만 봐도 그것이 '보테가베네타'임을 알 수 있었던 이유.
지난 17년 동안 보테가베네타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이끌어왔던 디렉터 토마스 마이어가 최상의 품질과 소재, 장인 정신, 현대적인 기능성과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가치를 과시하기 위해 로고 패턴을 사용했던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과 달리 로고를 드러내지 않고, 가죽끈으로 하나씩 엮는 방식인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사용한 짜임새만으로 브랜드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는 보테가베네타를 장인정신을 담은 고급스러운 럭셔리 브랜드로 입지를 굳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17년 동안 함께한 브랜드를 떠났고 지난해 7월, 셀린 출신 32살의 젊은 디렉터인 다니엘 리가 새롭게 합류하며 토마스 마이어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는 영국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1990년 헬무트 랭을 시작으로 메종 마르지엘라, 발렌시아가, 도나 카란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최근에는 셀린의 READY-TO-WEAR 디렉터로 활약했다. 피비가 셀린을 떠났을 때, 후임으로 예견되기도 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된 다니엘 리의 첫 번째 2019 PRE-FALL 컬렉션은 유례없는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대게 새로운 디렉터가 영입되고 공개되는 컬렉션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거나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 안전하게 시작하기 마련이지만 다니엘 리의 새로운 보테가 베네타는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역시 젊은 감성이 더해진 탓일까?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컬렉션으로 중년의 나이에 입고 싶던 브랜드에서 젊은 층에게도 당장 입고 싶은 느낌을 줄만큼 새로운 혁신을 가져왔다. 다양한 소재의 가죽을 코트, 톱, 팬츠, 스커트에 자유자재로 적용했고, 캐시미어, 실크, 울, 시어링 등 다양한 소재들을 사용해 풍성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또한 액세서리에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이코닉 백인 ‘맥시 카바’를 여성의 상체를 가릴 정도로 오버사이즈 ‘빅 백’으로 선보였고, 특유의 가죽 기법도 한층 와이드하게 재해석해 모던함을 더했다. 이번 시즌 가장 눈여겨볼 것은 아르코 백(ARCOBAG). 밀라노의 신고전주의풍 아치 건축물인 ‘평화의 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제품으로 오버사이즈로 시선을 압도하고, 돔 형태의 플립과 길이가 긴 곡선형 핸들로 우아한 조형미가 느껴져 현대적인 여성들의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적절하다.
그 외에 볼드한 액세서리와 앞 코가 네모난 스퀘어 토 샌들, 오버사이즈 첼시 부츠 등은 뉴트로(NEWTRO) 트렌드에 맞게 레트로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완벽히 재해석한 아이템. 이를 통해 피비의 셀린을 그리워하던 패션 피플들에게 ‘다니엘 리’라는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앞서 첫 데뷔작으로 선보인 2019 봄 캠페인은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컬렉션을 상징하며,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남녀 모델이 등장해 서로를 연결하고, 이탈리아 정신을 담았다. 나체를 그대로 드러낸 뒷모습이나 가죽 트렌치코트를 걸친 여성이 등장해 보테가 베네타의 상징적인 소재인 가죽과 사람의 피부 사이 간에 밀접한 연결고리를 구현한 매개체로 표현되었다.
밀레니얼 세대 디자이너의 영입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 진화해 나가는 보테가베네타의 다음이 기대가 된다. 장인 정신으로 가득한 담담하고 우아한 컬렉션을 지금 만나보자.